"있잖아. 구렌?"
"왜 또?"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자신을 귀찮게 구는 녀석이 톡톡 자신을 건드리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분명히 자기 집은 반대편인데도 왜 자신을 계속 졸졸 쫓아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이런 식이기에 떨쳐낼 수도 없었다. 구렌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저 앞으로 묵묵히 나아갈 뿐이었다.
"저기 카레집 있는데."
"아는데 왜?"
"엣, 정말?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한 건데?"
"...애초에 이 길은 우리집 가는 방향이거든? 당연히 알지 왜 모르겠어?"
"아니, 카레 좋아하잖아. 구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데?"
"흠. 그러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신야는 여전히 속 모를 미소를 지으며 구렌의 뒤를 졸졸 따랐다. 도대체 왜 따라오는 건데? 집에 안가냐? 그렇게 틱틱거리며 말했지만 그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스토커냐! 그렇게 말하자 그럴지도. 라고 신야가 말했다. 그 한결같음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집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내일, 조별과제 발표한다고 안했냐. 너?"
"그거 구렌도 나랑 같은 조잖아? 무슨 소리 하는거야?"
"...아, 그런가?"
신야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자신도 신야랑 같은 조라는 것이 생각났다. 왜 잊고 있었지? 구렌을 고개를 돌려 신야를 바라보았다. 신야는 뒤에서 자신과 조금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멈추어 섰다. 신야 또한 멈추어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른 봄, 길 가에 새하얀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저녁 노을이 점점 발 밑에 차오르는 늦은 오후. 무거운 전공책이 든 책가방, 구겨신은 운동화, 목이 늘어난 맨투맨 티셔츠. 이곳은 어디지?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신야가 다시 그 뒤를 따랐다.
"구렌~"
"또 왜?"
"그러니까, 내일 발표 말이야."
신야의 말에 다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이상했다. 신야도 멈추어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한 세계. 조용한 골목길, 앞에 뛰어가는 아이들. 장바구니를 가득 들고 집으로 재촉하는 엄마들의 발걸음. 자신의 낡은 청바지.
"신야."
"응?"
"여기 어디야?"
"헤에, 이제야 깨달았어?"
구렌의 물음에 신야가 계속 유지하던 거리를 한걸음 좁혀왔다. 구렌이 뒤를 돌아서 그런 신야와 마주쳤다. 그의 모습도 자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파란색 셔츠에, 편해보이는 검은 바지. 하지만 그 모습이 왠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신야를 향해 물었다.
"여기, 어디야?"
그러자 신야가 다시 한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 미래."
"...미래?"
"응."
다시 한걸음. 좁혀온다.
"있었을지도 모르는, 미래."
그리고 신야는 구렌의 앞에 바로 섰다. 구렌이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보이던 광경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보이는 건, 신야와 자신 둘 뿐이었다. 구겨진 운동화는, 정갈한 구두로.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하얀 셔츠로. 눈 앞의 신야도 단정한 군복 모습이 되어 제 앞에 서 있었다. 그때서야 머리가 개운해지며 주위가 맑아졌다. 신야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아아, 이제서야 깨어나면 어떡해?"
"얼마나 지났어?"
"30분 쯤?"
"...젠장."
구렌이 한숨을 팍 내쉬며 고개를 저어 남은 환상을 떨쳐냈다. 그랬다. 신야와 주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주술을 잘못 맞아서, 환상에 걸린게 2시간 전. 그런 자신의 주술을 풀겠다고 신야가 이래저래 덤벼들었을 꼴이 눈에 선했다. 수련 부족이다. 수련 부족. 구렌은 뻐근한 몸을 천천히 풀면서 우선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금 본 환상이 다시 떠올랐다. 그 환상 속의 신야가 말했다. 있었을 지도 모르는 미래. 정말? 구렌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에게 그런 선택지가 주어졌었던가? 과거를 짚어보았지만 그런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멍청한 이치노세 구렌 같으니. 어이가 없어서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뭘 보았는데? 아무리 해주하려고 해도 튕겨나오던데, 혼자서 어떻게 풀었어?"
"...그러게나 말이다."
신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냐고? 환상 속의 네가 너무도 어이 없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있었을지도 모르는? 말도 안되는 소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나에겐, 너에겐, 그리고 이 세상 또한. 그저 환상에 불과하는 미래였으니까.
"신야."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창가에 그저 터질 것만 같이 맺혀있는 하얀 목련 꽃봉오리가, 제 가슴에 맺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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